일상 다반사 / / 2022. 3. 31. 10:45

결혼기념일인데 왜 결혼식에 안가?

잔반을 처리하고자 남아있는 찬거리로 저녁을 차렸다. 그렇게 특별할 것 없는 소박한 밥상에서 아이, 남편과 식사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초인종이 울렸다. 
'이 늦은 시간에? 아랫집인가? 밥 먹느라 층간소음은 없을 텐데?'

오만가지 걱정이 만무할 때 즈음,  남편이 큰 박스를 하나 가져왔다. 늦은 시간의 택배라 당혹스럽긴 했지만, 아랫집은 아니라는 사실에 안도하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아무 생각 없이 택배 상자를 열었다.

결혼기념일꽃바구니
결혼기념일꽃바구니

보자마자 큰 웃음이 터져 나왔다.
"뭐야? 그렇네? 오늘이 결혼기념일이었구나!
 이럴 줄 알았으면 시켜먹었지!!!!!!'

5일 차이로 아이 생일과 결혼기념일이 뒤이어 있어서, 지난주에 이미 두 날을 기념하고자 여행을 갔다 왔던 터라, 오늘이 결혼기념일인 것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분명 알았다면 맛있는 걸 시켜먹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과 '저 꽃바구니는 도대체 얼마야?'하고 묻고 싶은 것을 참느라 혼이 났다. 주부가 돼서 그런지 가장 쓸데없는 선물, 이 꽃바구니가 예쁘면서도 돈을 떠올릴 수밖에 없는 나 자신이 씁쓸한 순간이었다. 그럼에도 생화가 주는 향기는 참으로 고급졌다. 삭막한 우리 집에 생기를 주는 느낌이랄까.

 

 


그렇게 감동을 만끽하는 순간, 아들이 더듬더듬 한글을 읽으면서 물었다.

'겨.ㄹ. 혼. 감. 사. 합. 니. 다. 남. 편. 드. 림. 그래서 이게 뭔데?'
'오늘이 엄마 아빠 결혼기념일, 결혼한 날이라서 아빠가 준비했데'
'그럼 왜 오늘 결혼식 안 갔어?'

한대 얻어맞은 듯한 충격적인 질문. 그 질문이 너무 순수하고 귀여워서 답을 해줬다.
'선율아~ 생일은 선율이 가 태어난 날이지?
그런데 생일이라고 해서 계속 선율이가 태어나는 건 아니잖아? (웃음) 
생일처럼, 결혼기념일도 그날을 기억하려고 이렇게 선물을 준비하는 거야.
그래서 약 7년 전 오늘, 이 날에 엄마 아빠가 결혼했다는 거라,  결혼식 갈 필요는 없어'

 

'그런데 가장 중요한 건 결혼을 하지 말았어야..'까지 말하고 싶었지만, 아름다운 엔딩을 위해 멈췄다. 한바탕의 해프닝으로 끝난 순간이었지만, 벌써 결혼한 지 7년이 지났고, 6세의 아들이 있다는 사실에 시간이 참 빠르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꼈다.  육아로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요즘이지만, 오늘만큼은 그냥 아무 걱정 없던 신혼 그때로 돌아가 단잠을 꾸려한다. 이런 날도 있어야지.

'고생하고 있어. 노블로. 엄마이자 아내로 잘하고 있어.
 조금만 힘내자!'

 

지금까지 노블루의 '결혼기념일' 이야기였습니다.

 

 

  • 네이버 블로그 공유
  • 네이버 밴드 공유
  • 페이스북 공유
  • 카카오스토리 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