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소독하러 오신 분이 '꼭 구경하는 집 같아요. 이 아파트가 원래 이런 구조가 아닌데 부엌이 너무 예쁘네요' 하면서 극찬을 해주셨습니다. 작년 3월에 인테리어를 한 입장에서 타인의 칭찬은 언제든지 듣기 좋습니다. 특히나 상부장 없는 주방 인테리어를 고심했던 저였기에, 현재의 선택이 좋은 결과로 이어진 것 같아 기분이 좋았습니다. 그렇다면 제가 왜 상부장을 고수할 수밖에 없었는지 세 가지 이유를 설명드리겠습니다.
상부장을 없애려 했던 이유
바로 빗각주방이라는 구조적 결함 때문이었습니다. 33평형임에도 주방 자체가 매우 협소했고, 세탁실, 보일러가 설치된 발코니와 붙어있어 매우 답답했습니다. 이를 타개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 바로 개방감을 높일 수 있는 '상부장'탈거였습니다. 미니멀리즘을 추구했던 저답게 모든 것을 버리면 하부장만으로 해결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매우 잘못된 생각이었음을 알게 됩니다.
이유 하나. 하부장엔 유휴공간이 부족하다.
빌트인 오븐, 12인용 식기세척기를 설치하자 하부장의 반이 사라졌습니다. 싱크대 하부 역시 공간 활용의 제약이 많은 곳이라 실질적으로 사용 가능한 곳은 오븐 옆, 서랍형 하부장뿐이었습니다. 정말 아차 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아무리 미니멀리즘을 추구한다 하더라도 사이즈별 필요한 조리도구, 그릇 등 넣을 공간은 꼭 있어야 했는데, 상부장이 없다면 절대 해결 불가능한 수준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상부장에는 비정기적으로 사용하는 도구들을 넣고, 냉장고 옆 키 큰 장에는 자주 사용하는 식기와 컵, 조미료를 배치하고, 서랍형 하부장에는 수저들을 배치했더니 깔끔한 동선으로 부엌을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요약하면, 하부장이 넉넉하지 않은 상태에서 빌트인 가전까지 넣는다면 상부장을 없애면 안 됩니다.
이유 둘. 선반 활용은 신중해야 한다
상부장을 없애면 그 대안으로 '선반'을 활용한 인테리어가 꼭 언급됩니다. 저 역시 상부장 없는 주방을 꿈꿀 때 무지주 선반을 두면 감성 주방을 연출할 수 있지 않을까 했었습니다. 그래서 관련 영상과 자료를 봤었는데, 현실은 달랐습니다. 정말 부지런해야만 선반 인테리어가 가능해 보였습니다. 선반 위 그릇, 컵 등에 쌓인 먼지를 수시로 관리해주어야 하며, 남에게 바로 보이는 부분이기에 그릇 역시 인테리어 적으로 예쁜 그릇을 써야만 할 것 같았고, 또 하나 너무 많은 식기의 노출은 오히려 주방을 지저 분하게 만드는 것 같았습니다. 주방은 가리면 가릴수록, 위에 놓인 물건이 없을수록 아름답고 깔끔하다고 생각하는 편이라 '깔끔한'주방을 위해서는 오히려 상부장이 필수였습니다.
그러니 저처럼 미니멀리즘을 추구하고, 최대한 심플 / 깔끔을 추구한다면 선반이 아닌 상부장을 그대로 이용하는 게 낫습니다. 더욱이 후드 역시 상부장의 일부분인양 인테리어 하면 (빌트인 오븐 위 상부장이 후드입니다) 더욱 일체감을 추면서 깔끔한 주방이 완성될 수 있습니다.
이유 셋. 상부장을 없애려면 제약이 많다 - 아파트 평수, 대체 수납공간 확보
상부장 없앨까요?라는 카페글에 가장 많이 달리는 댓글이 있습니다. 40평 이상이면 도전해보세요. 상부장을 대체할 수납공간을 확보하려면 최소 40평대 주방이 되어야 한다는 소리입니다. 이렇듯 부엌이 충분히 크면 하부장을 늘리거나 아일랜드 식탁을 추가해서 상부장을 대체할 공간을 만듭니다. 하지만 이 방식의 가장 큰 단점은 허리를 자주 굽혀야 한다는 것입니다. 상부장 없는 인테리어에 반해 이사했다가, 허리 때문에 상부장 다시 설치한다는 게시글이 올라오기도 하는 것처럼 하부만 늘리는 것은 답이 아닙니다.
오히려 키 큰 장을 최소 2개 이상 만들 수 있다거나 부엌에 팬트리가 있다면 과감하게 상부장을 없애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자주 쓰는 도구들은 정해져 있고, 나머지는 정말 보관에 가깝습니다. 더욱이 상부장 제일 꼭대기는 손도 닿지 않아 의자를 두고 올라가야만 합니다. 그래서 활용 빈도가 매우 떨어지는 것들을 보관합니다. 이렇게 생활하시는 주부가 대부분이 때문에 허리를 굽히지 않아도 되는 곳에 빈도 높은 도구들을 배치하고 나머지는 한 곳에 몰아넣는 게 가장 깔끔합니다. 그렇기에 단순히 인테리어적으로 생각하지 마시고, 활용도, 동선을 생각해서 상부장을 없앨지 말지 고민해야 하는 것입니다.
마무리하며
상부장 없는 주방 인테리어를 꿈꾸는 분이 많다는 거 압니다. 저역시도 그랬으니까요. 하지만 중요한 건 상부장을 대체할 수납공간이 충분한지, 대체공간이 나에게 불편함을 주지 않을지를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상부장이 있어도 정리만 충분히 잘하면 좁아 보이지 않는 주방을 연출할 수 있기에 '정리'를 먼저 진행하시길 적극 권하는 바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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